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사회

올여름 `대놓고 이상한 기후`…이대로면 태풍 몇번 더 올것

박윤균 기자
입력 : 
2020-09-04 16:57:02
수정 : 
2020-09-04 22:59:59

글자크기 설정

[Weekend Interview] 기상 전문가 손석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사진설명
손석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우리나라 강수 관련 정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손 교수는 세계기상기구(WMO)가 운영하는 4대 기후 프로그램 중 하나인 'SPARC'의 공동책임자다. [김재훈 기자]
올해 공식적으로 54일 동안 계속되던 장마가 끝나자 바로 폭염이 이어졌다. 그 이후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장미' '바비' '마이삭' 등 3개 태풍이 등장해 한반도를 할퀴고 지나갔다. 날씨에 지친 사람들은 기상청을 원망했다. 기상청에 대한 불신을 가진 '기상망명족(族)'이 노르웨이 기상청 자료들을 찾아내 한국 기상청 예보에 조소를 보냈다. 물론 우리 기상청이 틀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3일 우리나라를 통과한 제9호 태풍 '마이삭'의 경로 예측은 우리나라 기상청이 일본과 중국 기상청 등에 비해 정확한 예보를 했다. 날씨에 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가는 가운데 날씨 전문가를 만났다. 세계기상기구(WMO)가 운영하는 4대 기후 프로그램 중 하나의 공동의장으로 있는 손석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에게 우리나라 기상학(대기역학)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물었다. ―'기상 전문 학자'가 하는 일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린다.

▷기상 전문 학자는 날씨와 관련한 현상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 분석하고 정확한 예측 방법 등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학자들이 이론적이고 본질적인 것들을 연구하면 현장예보관이 이를 가지고 실제에 적용하는 것이다. 물론 기상 이론과 관련한 새로운 발견들이 곧바로 예보에 투입되면 좋은데 학문적 검증이 필요하기 때문에 적용하는 데는 시차가 있다.

―어떻게 대기역학을 전공하는 학자의 길에 들어섰나.

▷솔직히 말하자면 공부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하려는 선후배들은 군 복무를 보통 일기예보를 다루는 공군 장교로 했다. 하지만 나는 일찍 졸업하고 취업하려고 현역으로 입대했었다. 그런데 막상 졸업을 했는데 하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취직이 안 돼서 어쩌다 보니 대학원에 진학을 했다. 그런데 대학원 공부를 하다 보니 재미가 있더라.

―어떤 은사님께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나.

▷작고하신 박순웅 교수님이다. 박순웅 명예교수님은 은퇴하시고 작고하실 때까지 논문을 쓰셨다. 팔순이 다 되셨는데 학자로서 '정도(正道)'를 보여주신 분이다. 사실 은퇴하고 나서 논문을 쓰기란 쉽지가 않은데 평생을 연구에 매진하셨던 분이다.

―대기역학의 매력이 무엇인가.

▷은사님들에게 '자연과학 중에서 생명 살릴 수 있는 학문 몇 개나 될까'라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직접적으로 생명을 살리는 학문은 아니다. 하지만 자연재해에 대해서 경고할 수 있는 학문이고 이를 통해 생명을 살리는 데 기여할 수 있는 학문이라는 것이 보람된다. 또한 어떤 학문보다 실생활에 직결되는 학문이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기상학에 대해 말하자면 다른 어떤 학문보다 짧은 기간 안에 결과를 알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물리학 등은 검증되는 데 몇십 년이 걸리지만 기상학은 검증하는 데 그리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는다.

―반대로 어려움이 있나.

▷자연과학자들이 전반적으로 겪는 문제와 동일하다. 이제는 그 누구도 장래희망 얘기할 때 '과학자'를 쓰지 않는다. 과학이라는 가치를 놓아버린 세대가 된 것이다. 과학자들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세상이다. 기상학도 마찬가지인데 '과학을 연구하는 것이 가치가 있다'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면 좋겠다. 특히 학교에 있다 보면 수석 졸업을 하는 학생까지 의대로 편입하는 것을 목격한다. 서울대뿐 아니라 모든 학교 자연과학대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왜 기상청은 예보를 이렇게 못 맞히느냐'고 물어볼 때 곤란하다. 예보와 관련한 지식 발전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기상연구를 시작한 것은 30-40년 밖에 되지 않았다. 과거 1970~1980년대 원조 기상캐스터 김동완 통보관 시절이 더 정확한 예보를 했다며 그립다는 말도 나오는데 사실이 아니다. 우리나라 기상 예보 시스템은 꾸준히 발전했다. 물론 높아진 국민 눈높이에는 맞지 않을 수 있지만 학문은 속전속결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 국민들이 이해를 해주시면 좋겠다.

―사람들이 날씨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데 기상을 연구하는 이들이 많은 편인가.

▷많지 않다. 사실 20년 전보다는 많아지기는 했는데 여전히 다른 분야에 비해서는 전공자가 적다. 또한 환경문제 미세먼지 기후변화 등 날씨 말고도 분야가 넓어지면서 박사학위자가 많아지기는 했지만 날씨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또한 요즘 학생들이 대학원에 많이 진학하지 않는 것도 영향을 미친다. 기상학만의 문제가 아니고 자연과학대가 마주한 일반적인 문제다. 서울대 자연과학대조차 5년째 대학원 미달이다.

―이상기후가 실제로 심해지고 있나.

▷올여름은 '대놓고 이상한 기후'였다. 중부지방 기준으로 장마기간이 공식적으로 54일이었는데 이렇게 긴 장마는 한번도 경험해본 적 없다. 강수량 기록을 1900년대 초반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했는데 올해 많은 곳에서 109년 만에 최고 강수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안타깝게 이런 케이스는 예보하기 어렵다.

―예보하기 어려운 이유가 혹시 있나.

▷우리나라의 경우 '서해'가 문제다. 예보가 빗나가는 가장 큰 이유는 수증기가 많은 서해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레이더를 보면 비 내리기 2~3시간 전에 갑자기 뭉게구름이 발달하는 경우가 많다. 이 구름이 내륙으로 들어오면서 급격하게 더 커지면서 비를 뿌린다. 짧은 시간에 예보가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일본도 비슷한 상황인데 바다에서 급격히 구름이 발달해서 내리는 비 때문에 제대로 예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최근 구마모토현에서 사상자가 엄청 많이 난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수증기가 많은 지역 인근에서는 이런 일이 흔히 발생한다.

―올여름 장마는 왜 이렇게 길었던 것인가.

▷올여름 장마는 두 가지 이상의 요인이 동시에 발생해 그 영향력이 더욱 커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퍼펙트 스톰'에 가깝다. 먼저 인도양 지역이 매우 따뜻했고 이 때문에 생긴 거대 구름들에 의해서 북태평양 고기압이 평소보다 훨씬 서쪽으로 창출됐다. 북태평양 고기압의 확장은 장마전선의 북상을 막았고, 이때 성층에 강한 제트가 발생하면서 집중호우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8월 초중순 거의 매일 집중호우가 내렸다고 보면 된다. 또한 북극이 역대급으로 따뜻했던 탓도 있다. 이에 따라 한반도만 비가 많이 온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도 대홍수가 났고, 일본 오키나와·규슈 지역에도 한반도보다 심한 물난리가 있었다. 장마전선이 강하게 버티면서 끊임없이 비가 내린 것이다.

사진설명
―올해 태풍이 유독 많이 오는 건가. ▷지금 패턴이 계속된다면 한반도 접근하는 태풍이 평소보다 많을 가능성이 높다. 올해는 태풍 '장미'부터 '바비' '마이삭' 등 벌써 3~4개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게 됐는데 모두 한 달 안에 생기고 있다. 이 추세라면 평소보다 한반도가 많은 태풍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향후 우리나라 기후는 어떻게 변화할까.

▷많은 기후학자들이 공통적으로 기후 변화는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의견을 내고 있다. 150년 동안 정규 평균 온도 기준으로 1.1도 올라갔다. 20년 후라고 해봤자 1도도 안 오를 것이다. 문제는 극단적인 기후가 많이 발달할 것이라는 것이다. 작년과 재작년은 여름철 강수량이 평년보다 훨씬 적어서 '마른 장마'라는 표현을 썼는데 올해는 역대급으로 비가 많이 왔다. 실생활에서 느끼는 기상 변동폭이 점점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노르웨이 기상청이 예측을 더 잘하나.

▷아니다. 나도 깜짝 놀랐는데 노르웨이 기상청을 어떻게 찾았을까 싶었다. 사실 노르웨이 기상청은 큰 기관이 아니며 독자적으로 예보를 하는 기관이 아니다.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 모델이 예측한 수치를 그대로 찍어준 것에 불과하다. 노르웨이 사람이 서울·부산 등 한국을 모니터링하면서 예보하는 것이 아니다. 노르웨이 기상청 예보와 우리나라 기상청 예보를 실제로 비교하면 사실 우리나라 기상청 예보 적중률이 더 높기는 했다. 한두 건 정도 더 잘 맞았는데 이것이 부각돼서 훨씬 더 잘 맞는다는 얘기가 퍼진 것이다. 하지만 이 해프닝이 우리나라 기상 관련해서 시사한 바는 크다고 본다. 국민들 기대치가 그만큼 높아졌고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으면 능동적으로 본인이 원하는 서비스를 찾아나서게 된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기상 관련 예측 시스템을 비교하자면 어떤 변화가 있었나.

▷이제는 한국도 독자적인 인공위성을 가지고 있고 레이더 입체 관측이 가능해졌다. 특히 올해부터 대한민국도 독자적으로 개발한 컴퓨터 모델인 '한국형수치예보모델'이 생겼다. 기존에는 일본 기상청이 보내주는 일기도와 구름 사진을 받아서 분석했었다. 1997년부터 일본 기상청 모델(GSM)을 사용하다 2010년부터는 영국 기상청 모델(UM)을 빌려 썼다. 영국 모델은 세계 2위권 프로그램이지만 동아시아 지역 예측력이 낮다는 문제가 있었다. 10년 동안 개발해서 올해 처음으로 자체 모델 사용을 시작했는데 위성과 레이더 그리고 독자 구축 모델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조금 우리나라 기상 전망이 더 밝아질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과학에 대한 국민들의 큰 관심과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물리·화학·수학 등 기초과학계열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과학계열 학부를 수석 졸업해도 의학전문대학원으로 가는 것이 현실이다. 자원도 부족하고 조그마한 땅덩어리에서 살아갈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과학기술이라는 점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He is…

손석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1973년생으로 서울대 대기과학과와 같은 학과 대학원에 졸업했다. 석사를 마친 뒤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기상학 박사 학위를 땄다.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2년간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했다. 이때 유명 학술지 '사이언스'에 성층권 오존과 날씨에 대한 논문을 내면서 학계에서 관심을 받았고 캐나다 맥길대 교수가 됐다. 2012년 서울대로 자리를 옮긴 손 교수는 현재 세계기상기구(WMO)가 운영하는 4대 기후 프로그램 중 하나인 'SPARC' 공동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윤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