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 전 최고위원 “정치권은 ‘젠더 이슈’가 더 이상 사이드 메뉴가 아니란 것 깨달아야”

김민아 선임기자
박성민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달 27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서울시장 보선 결과의 핵심은, 청년의 삶에 정치가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30 세대가 우니까 사탕 하나 준다는 식의 대응은 유권자의 고민을 너무 평면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박민규 선임기자

박성민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달 27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서울시장 보선 결과의 핵심은, 청년의 삶에 정치가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30 세대가 우니까 사탕 하나 준다는 식의 대응은 유권자의 고민을 너무 평면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박민규 선임기자

민주당 ‘내로남불’ 위선과 오만
성비위 제 식구 감싸다…결국 참패
스스로 세운 원칙을 깨버린 결과
지도부였던 매 순간 후회만 남아

1996년생 박성민씨의 정체성은 다층적이다. 20대 여성이자, 대학교 4학년생이자, 정치인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유일한 20대 최고위원이던 그는 4·7 재·보궐 선거 직후 사퇴했다.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 서울시장 보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원인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무능, 위선, 오만이라고 봐요. 무능은 정책적으로 잘하지 못한 것이죠. 특히 부동산 문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이전부터 시작됐습니다. 집값을 잡겠다고 여러 차례 공표했음에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니까요.”

- 위선과 오만은 어떤 의미인가요.

“선거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들, 여권 인사(김상조·박주민 등)발 부동산 문제 등은 ‘내로남불’로 보이기에 충분했습니다. 박원순·오거돈 성추행을 다룰 때도, 피해자 중심주의를 외치던 정당이 제 식구 감싸기를 했고요, 오만은 (국민의 말을) 안 듣는 거죠. 귀 막고 눈 감고 우리만의 성을 쌓아갔습니다.”

- 지도부 일원으로서 특히 책임을 느끼는 부분이 있습니까.

“매 순간이 후회되는데요…. 부동산 문제에선 청년 입장에서 더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못했습니다. 지자체장 성비위와 관련해서도, 보다 빠르고 적절하게 사과하도록 역할을 했어야 합니다.”

- 서울시장 보선 출구조사 결과, 20대(18~29세) 여성의 15.1%가 소수정당·무소속 후보를 선택한 걸로 나타났습니다.

“데이터로 봤을 때, 제3지대를 향해 유의미한 투표를 한 세대·성별은 20대 여성이 유일합니다. 이번 선거의 출발점이 지자체장 성비위였음에도, 여성들의 분노와 불안을 대변해줄 후보가 집권여당에도 제1야당에도 없었다는 의미로 봅니다. 반면 제3후보들 가운데는 여성 인권·안전 공약을 전면적으로 내세운 경우가 많았고요. 그동안 정치권에선 젠더 이슈를 사이드 메뉴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많았는데, 더 이상 젠더 이슈가 마이너한 이슈가 아님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 사표(死票)가 될 줄 알면서도 표를 던진 건데요.

“민주당으로선 뼈아픈 일입니다.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하던 20대 여성들이 제3후보에게 투표했다는 건, 민주당이 젠더 이슈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의 마음을 잃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운 원칙을 우리가 깨버린 결과죠.”

-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은 박원순 전 시장의 성폭력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반면 민주당은 윤호중 원내대표가 국립현충원에서 ‘피해자님이여’ 식으로 생뚱맞은 언급을 해 비판받았습니다.

“박원순 사건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사실관계를 인정한 사안입니다. 민주당은 우리 사회를 후퇴시킨 데 대해 제대로 사과해야 합니다. 차기 당대표와 최고위원이 선출된 뒤 지도부 차원의 사과가 필요합니다. 공식적으로, 진정성 있게, 정중하고, 예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음 단계로 발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정치권의 남성 중심 문화는 여전
젠더 이슈에 대한 예민함 떨어지고
젊은 세대의 감수성 반영 못해
세대 교체론이 계속 언급되는 이유

- 민주당은 20대 여성 표심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대신 국민의힘 지지 성향을 보인 20대 남성에게 ‘올인’하는 모양새입니다.

“출구조사 결과가 나온 뒤 20대 남성의 72.5%를 차지한 ‘빨간 막대기’(국민의힘 지지)에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동안 20대 남성이 우리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위기의식이 점증해왔는데, ‘72.5’란 숫자에 위기감이 확 든 거죠. 이들을 못 잡으면 향후 선거도 질 수 있겠구나 싶고요. 그리고 정치권에는 아직도 남성 중심 문화가 만연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당이든, 다른 당이든 젠더 이슈에 대해 감각하는 예민함이 굉장히 떨어져요. 이런 부분에서 유권자가 실망하는 걸 ‘캐치’하는 데 오래 걸리고요. 20대 여성의 15.1%가 제3후보를 선택한 현상을 보고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판단이 안 되는 거죠.”

- 일부 정치인은 ‘군 가산점 부활’ 등을 들고나왔습니다.

“선거 이후 청년 유권자를 주목하게 된 건 환영할 일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이 군과 관련된 제도로 국한된다면, 표심을 제대로 읽었다고 보기 힘들겠지요. 이번 선거 결과의 핵심은, 청년의 삶에 정치가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제대로 접근하려면, 양극화 개선 등 국가정책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2030이 우니까 사탕 하나 준다는 식은 유권자의 고민을 너무 평면적으로, 1차원적으로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당에서 청년층 마음을 잡겠다며 하는 일들을 보면, 고민을 덜 하고 있구나, 너무 쉽게 생각하는구나 싶습니다.”

- 20대 여성들은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사례에서 보듯 취업의 벽이 높다고 말합니다. 취업한다 해도 결혼·출산·육아로 인한 불이익이 닥칠 것을 걱정하고요. 최근 김태현 사건에서 보듯 ‘안전’에 대한 불안도 호소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형량이 너무 약하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정치의 역할 중에 사회의 스피커 역할도 포함됩니다. 재판부를 압박할 수는 없지만, 범죄의 중대성을 지적함으로써 사회적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법의 미비점을 정교하게 보완하거나 개정할 수도 있습니다. 정치가 이를 방기해선 안 됩니다. 또한 여성이 결혼하고 육아를 하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거란 인식이 만연해 있는데, 제도적으로 돌봄 공백을 메우는 식으로 보완해줘야 합니다. 여성이 타고난 성별로 제약받는 부분을 막아줘야 합니다.”

- 20대 최고위원으로 일하면서 ‘벽’ 같은 걸 느꼈나요.

“우리 정치에서 세대교체론이 계속 언급되는 이유는, 새로운 세대의 생각과 감수성을 반영할 수 있는 정치인이 너무도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냉정하게 말씀드리면, 공부한다고 (청년의 생각을) 알기 어렵습니다. 20대가 공부한다고 아버지 어머니 세대를 알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예요. 현실이 이렇다보니 정치가 다루는 주제, 정치가 이슈에 접근하는 방식이 모두 ‘올드’해집니다.”

구조 개혁 없이 청년 문제 못 풀어
경제민주화·차별금지·연금 개혁
지속 가능한 ‘진짜 논쟁’은 외면
인스턴트화되어 가는 정치 아쉬워

- 세대교체론을 이야기하면 ‘세대 내부 계급 격차를 외면한다’는 비판이 따라옵니다.

“세대 만능론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의 정치 구조는 너무 기형적이에요. 청년이 정치에 들어와야 하는 이유는 청년 문제를 인지하고 감각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미래 어젠다를 발견하고 준비함으로써 앞으로의 세상을 디자인할 수 있기 때문이죠. 현재의 문제에 천착하는 정치와, 앞으로 내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 하는 정치는 다릅니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늦는 과제들에 대비해야 합니다. 요즘 고민하는 부분이, 정치가 점점 인스턴트화된다는 겁니다. 정치인은 민원 해결사가 아닙니다. 한국 사회의 구조를 새로 짜고 고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진짜 논쟁’을 안 하고 있어요.”

- 진짜 논쟁해야 할 사안은 어떤 것들인가요.

“경제민주화, 차별금지법, 연금개혁 같은 것이죠. 흐름을 일대 전환할 수 있는 이슈에 대해선 회피하는데, 청년 문제가 결국 사회문제입니다. 사회구조에 손 대지 않으면 청년 문제도 풀릴 수 없습니다.”

박성민은 고등학교 졸업 직전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 후로 일을 쉬어본 적이 없다. 스무 살, 스물 한 살 무렵에도 아르바이트를 두 개씩 하며 대학에 다녔다. 늘 뭔가 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남들이 보면 열심히 산다고 했을지 모르지만, 이제 와 돌아보면 ‘자기학대’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또래들보다 일찍 정치에 뛰어든 이후로는 ‘정치인 박성민’으로 24시간 스위치가 켜진 채 살았다. ‘개인 박성민’은 돌보지 못했다. 그는 요즘 “어떻게 해야 스스로를 돌볼 수 있을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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