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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사체 엔진 수출 타진하던 연구자들 '칭찬' 대신 '경고'…과기정통부의 이상한 감사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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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사체 엔진 수출 타진하던 연구자들 '칭찬' 대신 '경고'…과기정통부의 이상한 감사 결과

2021.06.29 13:12
러시아도 미국에 우주발사체 엔진 판매...해외 발사체 기업 국내 엔진 구매 의향
한국형발사체 75톤급 액체엔진연소시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한국형발사체 75톤급 액체엔진연소시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올해 10월 발사될 한국형발사체(KSLV-2) ‘누리호’의 심장에 해당하는 국산 75t급 액체엔진을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타진한 해외 발사체 기업과 접촉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원들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경고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발사체 엔진 완성품을 판매하기 위해 실무 차원에서 접촉한 사안을 원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우주 발사체용 75t 액체 엔진은 국가핵심기술이라 개발 노하우와 제작기술의 직접적인 유출은 금지돼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미국에 발사체 엔진을 판매하고 있는 가운데 엔진 기술과 개발 노하우를 유출한 것이 아닌 엔진 완성품 구매 의사를 타진해온 해외 기업을 실무차원에서 만났다는 이유로 경고 처분이 나온 것은 누리호 상업용 개량과 우주산업화에 시동을 걸고 있는 과기정통부의 최근 행보와 앞뒤가 맞지 않아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8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공개한 항우연 종합감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과기정통부 감사관실은 2015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항우연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에서 발사체엔진개발부장을 담당했던 김모 책임연구원에 대해 75t 엔진 판매 건과 관련해 원장의 지시사항을 미이행하고 보고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경고 조치를 내릴 것을 요구했다.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은 2010년부터 2022년까지 1조9572억 원을 들여 국내 기술로 중형급 발사체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이 가운데 1단과 2단에 들어가는 75t급 액체엔진은 가장 핵심기술로 꼽힌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항우연 원장을 지낸 조광래 전 원장과 김 책임연구원 등 4명은 2018년 7월부터 12월까지 당시 항우연 원장인 임철호 전 원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우크라이나의 벤처회사와 75t급 액체엔진 판매를 놓고 협의를 진행했다. 이 벤처회사는 미국 발사체 스타트업 파이어플라이의 주요 투자자이자 설립자 중 한 명인 막스 폴리아코프가 설립자겸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파이어플라이는 소형발사체 분야의 잠룡으로 평가된다. 이 회사가 개발한 소형발사체 파이어플라이 알파는 1t의 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올릴 수 있는 2단 발사체로 4개 엔진을 묶어 누리호 75t 엔진의 추력인 735kN과 거의 비슷한 736kN의 추력을 내도록 설계됐다. 내달 중 미국 캘리포니아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발사를 앞두고 있다. 이 회사는 NASA를 대신하여 10개의 화물을 달로 운송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조 전 원장에 따르면 폴리아코프 CEO는 파이어플라이를 스페이스X와 같은 기업으로 키우고 싶다며 다양한 엔진을 확보해 파이어플라이 알파외에도 여러 종류의 발사체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며 한국의 75t 액체 엔진을 구매할 의사를 타진해왔다. 폴리아코프 CEO와 항우연 실무 선에서 이야기가 오갔고 2018년 8월과 11월 두 차례 걸쳐 직접 항우연과 국내 관련 산업체를 방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양측이 제시한 조건이 서로 맞지 않아 12월에 관련 논의는 일단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당시 75t급 엔진 판매와 관련해 양측이 접촉한 사실은 발사체사업단과 과기정통부에도 보고된 것으로 현재까지 확인되고 있다. 발사체사업단 관계자에 따르면 과기정통부 측에서도 판매를 독려했다. 조 전 원장은 “2018년 11월 누리호 시험비행을 성공한 이후 업체 측이 미팅을 더욱 적극적으로 요청했고 과기정통부에도 이를 보고했다”며 “과기정통부에서도 잘 성사시켜 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러시아만 해도 1999년 이후 미국의 아틀라스V 발사체에 116개에 이르는 RD-181 엔진을 공급하고 있다.

 

조 전 원장은 “당시 임철호 원장에게도 이를 서면 자료를 통해 실무선에서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임 전 원장은 이를 보고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2019년 12월과 2020년 1월 중 해외 판매 협상 추진 이야기를 항우연 내 다른 연구자에게서 전달받은 뒤에야 알게 됐다는 게 임 전 원장의 주장이다. 그뒤 임 전 원장은 지난해 1월 14일 회의석 상에서 75t 엔진 판매와 관련해 주고받은 모든 자료를 보고할 것을 김 책임연구원에게 지시하고 이후 이메일로도 지시했다.

 

당시 임 전 원장은 조 전 원장에게는 직접 보고를 요청하지 않았다. 임 전 원장과 조 전 원장은 최근까지도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조 전 원장은 국민신문고에 임 전 원장이 술자리에서 연구원에게 폭언을 저지르고 술잔을 던졌다는 민원을 제기했다. 임 전 원장은 조 전 원장을 연구관련이 없는 부원장실로 전보 발령을 내며 갈등을 빚기도 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당시 임 전 원장이 내린 지시에 대해 관련 협의를 조 전 원장이 담당한 만큼 본인은 당사자가 아니며 자료를 조 전 원장에게 직접 받으라고 했다"고 밝혔다. 김 책임연구원은 "본인이 전달하면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된다고 판단해 자료를 전달하기 어렵고 조 전 원장에게 자료를 직접 받는 것이 맞다고 임 전 원장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 전 원장은 감사 과정에서 “관련 자료를 조 전 원장에게 받으라는 내용의 보고는 없었던 것으로 생각한다”며 김 책임연구원의 주장과 배치되는 말을 했다.

 

과기정통부는 보고서에서 "김 책임연구원이 ‘정당한 사유 없이’ 보고를 거부했다"고 판단하고 임 전 원장 측의 손을 들었다. 조 전 원장과 폴리아코프 CEO 사이에 오고간 내용은 사적인 문건이 아니며 김 책임연구원이 관련 내용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임 전 원장의 진술도 주요 근거로 제시하며 힘을 실었다. 이상학 과기정통부 감사관은 “이번 감사는 내부 보고체계에 대한 것을 문제로 봤다”며 “복무 규정 위반 부분에 대해 기강 문제를 다룬 것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감사를 받은 당사자들은 "과기정통부가 처음에는 75t 엔진을 판매하는 행위에 주목하고 보고 감사에 착수했다가 기술 유출에 대한 아무런 혐의점을 찾지 못하자 연구원 내부 문제인 보고 문제를 엉뚱하게 걸고 넘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75t 엔진은 ‘산업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해 국가핵심기술로 분류돼 관리를 받는다. 만약 정부 허가 없이 판매 과정이 진행됐다면 기술유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감사에서도 당시 판매 협의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감사관도 “허가 없이 판매했다면 기술유출 문제에 걸리지만 판매를 타진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며 "법령 위반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감사가 임 원장과 갈등을 빚어온 조 전 원장에 대한 강도 높은 감사의 연장선에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과기정통부는 한때 나로호 발사 성공의 핵심 주역이라며 추켜세우던 조 전 원장에 대해 지난해 말부터 이례적인 집중 감사와 징계 조치 요구를 하고 있다. 금전 비리와 75t 액체엔진 판매, 원장 재임 시절 권한 남용으로 특정인 채용에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 등이 과기정통부가 제시한 감사 근거다.

 

과기정통부는 조 전 원장에 대해 이중 채용 특혜와 관련해 사실이 확인된다며 중징계를 내릴 것을 항우연에 요구했고 조 전 원장 측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지만 재심에서 기각됐다. 이 감사관은 “채용 관련 문제는 규정이나 법률에서도 중대한 3대 위법 행위로 보고 있다"며 세간에 떠도는 '표적감사' 주장에 대해 일축했다.

 

항우연은 내달 5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조 전 원장의 징계 수위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조 전 원장은 변호사를 선임하고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조 전 원장은 “과기정통부의 감사결과 통보서를 봐도 문제가 직권남용인지 채용 비리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하지 않다”며 “법의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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