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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생활 디자인

최정호 명조체, 1950년대

명조체는 가독성이 높아 한글 지면 본문 텍스트용으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활자체의 이름이다. 명조체라는 양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쇄용으로 설계해서 그리는 활자체와 손으로 쓰는 글씨체의 상관관계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궁서체나 손글씨체, 필기체 등은 붓이나 펜으로 쓴 글씨체를 그대로 활자화한 양식들이다. 반면 돌기가 없는 고딕체는 글씨체 특유의 자연스러운 손의 흐름을 거의 반영하지 않은 채 설계된 활자체이다. 명조체의 성격은 이들의 중간에 위치한다. 즉, 손으로 쓴 글씨체를 기본 골격으로 삼으면서도 정연한 인쇄체적 설계를 거친 활자체 양식이 명조체인 것이다.

한글 순명조와 한글 명조체(1981)

명조체라는 이름은 한자의 명조체에서 유래했다. 한자 명조체는 가로획과 세로획의 굵기 차이가 뚜렷하고, 수직 수평의 직선성이 강조되었으며, 획의 끝돌기는 세모 모양으로 도안되어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다. 이러한 한자 명조체의 형태적 특징을 직접적으로 모방한 한글 활자체를 순명조체라 부른다. 그러나 이같은 인위성은 한국인의 미적 정서나 한글의 특질에는 다소 이질적이었던 모양이다. 보다 보편적으로 쓰이는 한글 명조체는 글씨체를 바탕으로 인쇄용 성격을 강화해 설계된 활자체라는 점에서 한자 명조체의 특징을 수용하면서도 붓글씨다운 부드러움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자의 활자체와 굳이 비교하자면, 한글 명조체의 조형적 특성은 한자 명조체보다는 한자 해서체에 좀더 가깝다.

명조체라는 이름에 대해선 논란이 많은데, 서구식 근대 인쇄가 일본을 거쳐 유입되던 당시 본문기본형 활자체의 일본식 이름이 그대로 흡수되어 붙은 듯하다. 하지만 오늘날의 일반적인 한글 명조체는 한자의 명조체와도 가나문자의 명조체와도 외관의 성격이 다른데다 한글의 독자적 고유성을 훼손하는 이름이라는 우려도 있어, 1992년 문화부는 명조체를 ‘바탕체’로 개칭하기도 했다. 형식 면에서 보아도 한글 명조체는 한자 명조체의 설계된 느낌을 약간 공유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글 정체 글씨체인 해서체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한글 글자체의 역사로부터 양식적 근거를 찾는다면 ‘명조체’보다는 ‘해서체’나 ‘정자체’라는 이름이 적절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미 명조체라는 이름이 오랫동안 쓰인 상황에서 다른 이름을붙이는 것은 새로운 혼란을 초래할 뿐이라 하여 개칭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글 명조체에 영향을 준 전통인쇄 시대의 글씨체와 활자체들.
좌)[옥원중회연]연대미상,궁체 정자 글씨체 우)[오륜행실도 언해]정도21년(1797년)간행.

한자 명조체의 형태를 직접적으로 수용한 양식은 1930년대 <동아일보>에 사용되었던 이원모 활자체를 거쳐 오늘날 한글 순명조체에 이른다. 한편, 한글 궁체의 정체를기본 골격으로한자 명조체의 설계적 성격을 접목한 양식은 18세기 말 오륜행실도 활자체, 서구식 인쇄술 도입기의 최지혁 납활자체, 1930년대 <조선일보>에 사용되었던 박경서 활자체, 1950년대의 최정호 활자체를 거쳐 지금의 한글 명조체에 이르렀다. 명조체의 먼 원류라 할 수 있는 궁체는붓글씨로 글씨를 쓰기 위한 필요에 의해 양식화된‘글씨체’로서의 정점이다.활자체로서 명조체의 보다 가까운 뿌리로는 18세기 말 정조 시대에 주조된 ‘오륜행실도 한글자체’를 꼽을 수 있다. 이 한글 활자체에 이르면서 명조체 특유의직접 붓으로 쓴 듯하면서도 정돈된 느낌을 지닌 인쇄용 명조체가완성되었다. [오륜행실도]에서는 한자와 한글이 함께 조판되었는데 이때 한자 활자체로는 명조체가 사용되었다. 이 한자 명조체와 보기 좋게 어울리는 한글 활자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한글이 한자 명조체의 영향을 다소나마 받았다는 사실만은 부정하기 어렵지만, 영향을 수용한 방식은 독자적이었다.

19세기 후반에는 서양 문물이 유입되면서 한글이 한자뿐 아니라 로마자와 함께 조판되기 시작했다. 서양 선교사들이 성서를 비롯하여 영어나 프랑스어 사전들을 간행한 것이다. 1880년에 만들어진 프랑스어 사전인 [한불자뎐]에는 서양 선교사들이 가톨릭 신자였던 최지혁의 글씨를토대로 주조한 활자가 사용되었다. 이 사전에서는 로마자의 로만체, 한자의 명조체, 한글의 해서체가 함께 쓰였다. 서구식 근대인쇄가 들어오고 소위 신식활자인 ‘해서체 납활자’가 만들어지면서 이제 현대 명조체 활자의 기틀이 갖추어졌다.

1920년대에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창간되면서, 신문 본문용으로 사용할 작은 한글 활자체 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1930년대에 <동아일보>에서는 이원모의 활자체를, <조선일보>에서는 박경서의 활자체를 사용했다. 이원모체는 순명조체 계열, 박경서체는 명조체 계열의 양식적 특징을 보인다.

최정호가 직접 그린 명조체 원도와 그가 글자를 설게하는데 사용한 필기구,그리고 최정호 명조체의 형태적 특성

한글 명조체의 변천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이정표로는, 무엇보다도 1950년대 최정호가 모눈종이에 직접 그려서 설계한 명조체의 원도를 꼽을 수 있다. 이 원도들이야말로 오늘날 한국 서적 및 문서에 쓰이는 명조체의 형태적 특성을 확립한 직접적인 원형이기 때문이다. 그는 박경서 활자체를 연구해서 당시 새로운 기술인 사진식자용 명조체 원도를 개발했고, 하나의 활자체를 위해 2천 자 이상의 한글 원도를 손으로 일일이 그렸다. 이 방대한 작업을 혼자서 모두 소화하다 보니 디테일을 보완해야 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그의 공헌에 한국인들의 활자 생활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힘입은 바가 크다.

명조체 양식을 따르지만,조금씩 차이가 나는 여러 한글 디지털 활자체들

바야흐로 디지털 활자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최정호의 원도도 그대로 디지털화되었다. 컴퓨터 툴에 의존하는 디지털 활자체의 한계상비록 손 움직임의 깊은 맛까지 그대로 복원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원본에 충실하게 제작되었다. 이후 윤디자인 연구소, 산돌 커뮤니케이션 등 여러 한글 서체 개발 회사에서 다양한 명조체를 개발하여 선보여왔다. 최정호 명조체가 필기의 관습과 직관을 따라 완성된 형태미를 지녔다면, 새로 개발된 몇몇 디지털 명조체들은 논리와 체계를 부여하여 기능적 측면을 강화한 점이 눈에 띈다. 이에 더불어 명조체를 기본으로 성격적 변화를 준 새로운 해석들이 등장한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부드러운 명조체를 기본으로 하되 직선적이고 절도있는 획형으로 마감해 남성적 미감을 보여주는 석금호의 산돌제비체, 한글 명조체의 원류인 정조 시대의 오륜행실도 한글 자체를 직접 디지털화한 해석을 담아낸 임진욱의 정조체 등이 그것이다.

발행일

발행일 : 2010. 03. 09.

출처

제공처 정보

  • 유지원

    서울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독일 라이프치히 그래픽 서적예술 대학에서 타이포그래피를 전공했다. 산돌 커뮤니케이션의 책임연구원이며, 타이포그래피 칼럼니스트로 여러 매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 이미지 세종대왕기념 사업회, 최수인 제공(최정호 명조체 원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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